건강검진에서 안압을 재고 "정상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놓입니다. 눈이 따끔거리거나 시야가 흐려지는 것도 아니고, 수치도 정상 범위(10~21mmHg)라니 안심할 만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나라 녹내장 환자의 70~80%는 바로 이 "정상 안압"인 상태에서 시신경이 서서히 망가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정상안압 녹내장'입니다. 서양에서는 드문 유형인데, 유독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사람들에게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 안압은 정상인데 왜 시신경이 손상될까요
일반적인 녹내장은 안압이 높아 시신경이 눌려서 손상됩니다. 하지만 정상안압 녹내장은 두 가지 다른 이유로 생깁니다. 첫째, 사람마다 시신경이 버틸 수 있는 압력의 한계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정상'인 안압이, 시신경이 선천적으로 약한 사람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둘째, 시신경으로 가는 혈류 장애입니다. 손발이 찬 수족냉증, 저혈압, 편두통이 있는 분들에게서 정상안압 녹내장이 더 자주 발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유독 한국인에게 많은 까닭
서양인은 안압이 높은 녹내장이 흔한 반면,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정상안압 녹내장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동양인은 시신경이 지나가는 통로 주변 조직이 상대적으로 얇고 약한 경우가 많아 정상 범위 내의 작은 압력 변화에도 시신경이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여기에 우리나라 특유의 높은 고도근시 인구도 한몫합니다. 근시가 심하면 안구 길이가 늘어나면서 시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져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3. 왜 더 무서운가 - 세 가지 이유
- 통증 없는 진행: 안압이 급하게 오르면 통증이나 충혈이 나타나지만, 정상안압 녹내장은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시신경이 죽어갑니다. 말기가 되어 시야가 좁아진 걸 체감하기 전까지는 눈에서 아무 신호도 느끼기 어렵습니다.
- 검진의 사각지대: 건강검진에서 안압만 재고 "정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안심하기 쉽지만, 안압 수치만으로는 녹내장 여부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 회복 불가능: 녹내장 치료의 목표는 시력 회복이 아니라 '남아 있는 시력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미 죽은 시신경은 현대 의학으로도 되살릴 수 없어, 발견이 늦을수록 실명 위험이 커집니다.

4. 시신경을 지키는 생활 습관 4가지
① 40세가 넘었다면 눈에 별다른 이상이 없어도 1년에 한 번은 안과에서 안저 검사와 시신경 단층촬영(OCT)을 받아보세요. 단순 안압 측정만으로는 정상안압 녹내장을 걸러내기 어렵습니다.
② 흡연은 안압 상승과 시신경 혈류 저하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금연을 실천하세요.
③ 머리로 피가 몰리는 자세나 복압이 크게 올라가는 운동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④ 항산화 물질이 풍부한 채소·과일과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고루 섭취하면 눈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이런 땐 습관보다 병원부터
다음 중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습관 개선보다 안과 검진을 먼저 예약하세요. 40세 이상이면서 근시가 심한 경우, 가족 중에 녹내장 환자가 있는 경우, 손발이 찬 수족냉증이나 저혈압, 편두통이 잦은 경우, 최근 시야 한쪽이 좁아지거나 사물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경우입니다.

오늘 바로 하나만
오늘은 거창한 습관을 시작하기보다, 가까운 안과에 전화해 안저검사와 시신경 단층촬영(OCT) 예약을 잡아보세요. 특히 최근 1년 안에 눈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면 더더욱 미루지 마세요.
참고: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안과 이시형 교수 인터뷰, 헬스경향 '미처 몰랐던 정상안압 녹내장' 기사, 대한안과학회 관련 자료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이 글은 생활 정보이지 진단이나 치료가 아닙니다. 증상이 의심되면 반드시 안과 전문의와 상담하세요.